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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칼럼] 완벽한 전산 통제와 거대 플랫폼의 산맥: 서민 경제를 질식시키는 '규제의 역설'

경제
작성자
biolove2
작성일
2026-09-25 00:58
조회
17
우리는 바야흐로 '완벽하게 기록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지갑 속 실물 현금은 스마트폰 속 디지털 신호로 대체되었고, 길거리의 작은 구멍가게들은 모니터 속 거대 온라인 쇼핑몰의 카탈로그로 흡수되었다. 행정은 고도화되었고 시스템은 투명해졌으며, 소비는 전에 없이 편리해졌다.

그러나 이 찬란한 디지털 경제의 이면에서 우리의 골목상권과 서민 경제는 서서히 산소 호흡기를 떼어가고 있다. 보이스피싱을 막겠다는 명분, 탈세를 근절하겠다는 정의로운 깃발 아래 설계된 촘촘한 전산망이, 역설적으로 서민들의 실물 경제 활동을 발가벗기고 꽁꽁 묶어버리는 '동맥경화'를 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가장 가혹한 부작용, 즉 '규제의 역설(Paradox of Regulation)'이 대한민국 서민 경제의 핏줄을 옥죄고 있다.

1. 선의로 포장된 촘촘한 그물망, 누구를 잡고 있는가

규제의 역설이란 공익을 목적으로 도입한 규제가 본래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시장을 왜곡하고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큰 고통을 안기는 현상을 말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금융 전산 시스템은 세계 초일류 수준을 자랑한다. 하루 1,000만 원 이상의 현금을 인출하거나 입금하면 고액현금거래보고제도(CTR)에 의해 국가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자동 보고된다. 은행에서 통장 하나를 개설하려 해도 잠재적 보이스피싱 가담자나 대포통장 개설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산더미 같은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범죄와 탈세를 막겠다는 취지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그물망이 너무나 작고 촘촘하게 짜인 나머지, 정작 거대한 고래(대형 범죄자나 고액 탈세자)들은 변호사와 회계사, 혹은 해외 가상자산망을 통해 유유히 빠져나가고, 법의 틈새에서 유연한 현금 흐름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평범한 서민들만 그물에 걸려 질식하고 있다.

2. 통제된 금융 전산망이 빼앗아간 서민 경제의 '유연성'

과거 서민 경제의 본질은 '유연성'과 '즉시성'에 있었다. 급전이 필요할 때 이웃끼리 차용증 한 장 없이 수백만 원을 빌려주고 갚거나, 전통시장과 노점에서 무자료로 현금이 돌며 즉각적인 소비로 이어지는 흐름이 존재했다. 이 푼돈의 순환은 법의 테두리 밖을 표류하는 범죄가 아니라, 척박한 현실을 견디게 하던 일종의 민생 완충지대였다.

그러나 모든 거래가 전산화되고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받는 지금, 서민들의 자금 융통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1,000만 원이라는 기준은 자산가들에게는 푼돈일지 몰라도 소상공인들에게는 생명줄과 같은 금액이다. 이를 인출할 때마다 국가의 감시 시선을 느껴야 하고, 통장 개설마저 제한되는 사회에서 서민들은 정당한 경제 활동조차 '의심받는 행위'로 위축당하게 된다. 돈이 은행 전산망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갇혀버리니, 시장 내부에서 돌아야 할 실물 유동성이 증발해 버리는 현상이 발생한다.

3. '인터넷 거대 산맥'에 멸종당한 골목상권의 생태계

이러한 전산 통제의 장막 위로, '인터넷 쇼핑몰과 거대 플랫폼'이라는 거대한 산맥이 골목상권을 통째로 집어삼키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본격화된 인터넷 유통 혁명은 오프라인 매장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지워버렸다. 소비자는 안방에 앉아 손가락 몇 번으로 공산품을 시중가의 70~80% 가격에 구매한다. 유통 단계가 축소되고 가격이 파괴된 것은 소비자 후생 측면에서 축복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거대 산맥이 만들어낸 그늘은 너무나 짙다.

과거 동네 골목을 채우던 철물점, 구멍가게, 양복점, 서점은 공산품을 유통하던 주역들이었다. 도매상에서 물건을 떼어와 동네 이웃에게 마진을 붙여 팔고, 그 벌어들인 돈으로 옆집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지역 내부에서 부가 순환했다. 지금은 그 수많은 업종들이 거리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현재 우리가 마주하는 거리 상가는 오직 인터넷 선이 닿지 않는 영토, 즉 미용실이나 식당, 테이크아웃 카페, 공인중개사처럼 '신체적 접촉이나 공간적 즉시성'이 필수적인 서비스업뿐이다.

4. 시골로 번진 자본의 독점과 공동체의 해체

공산품 유통이라는 서민들의 거대한 경제적 영토가 쿠팡이나 네이버 같은 거대 플랫폼 기업에 통째로 귀속된 결과, 소비자가 지출한 돈은 이제 동네 상권에 단 1원도 머물지 않고 대기업 본사의 디지털 계좌로 곧장 빨려 들어간다. 서민들은 더 이상 독립적인 상인이 될 기회를 잃고, 거대 플랫폼의 배달 라이더나 입점 업체의 하청 노동자로 전락하여 거대 산맥의 부를 쌓아주는 부품으로 소모되고 있다.

지방과 시골의 현실은 더욱 참혹하다. 인구 감소로 골목 구멍가게가 멸종한 자리를 농협 하나로마트라는 거대 자본이 완벽하게 독점했다. 시골 서민들은 담배 한 갑, 두부 한 모를 사기 위해서도 하나로마트라는 거대한 단일 창구로 발길을 옮겨야 한다. 지역 상권의 생태계가 붕괴하면서, 과거 구멍가게가 수행하던 사랑방 역할과 이웃 간의 정서적 공동체마저 함께 해체되었다.

5. 징벌적 통제를 넘어 '유통의 출구'를 열어야 할 때

결국 정부의 완벽한 금융 통제와 거대 플랫폼의 독점이 맞물리면서 서민 경제는 극심한 '동맥경화'를 앓고 있다. 보이스피싱을 잡겠다고 서민들의 손발을 묶어놓은 규제는 정작 지능화된 사기 집단이 대포통장 대신 해외 가상자산이나 불법 사설 금융망으로 도망치는 것을 막지 못한다. 규제가 완벽을 추구할수록 시장의 자율성과 역동성은 사라지고, 정직하게 땀 흘려 일하는 서민들의 거래만 가로막히는 역설이 매일 반복된다.

돈은 우리 몸의 피와 같아서 한곳에 고여 있거나 대기업의 금고로만 흘러 들어가면 경제라는 유기체는 결국 괴사하고 만다. 진정한 민생 회복과 서민 경제의 부활은, 서민들을 잠재적 범죄자나 탈세자로 취급하는 숨 막히는 통제 시스템을 완화하고, 음지에 갇힌 지하자금이 양지로 나와 활발하게 유통될 수 있도록 제도적 출구를 열어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전산망의 눈을 흐리게 하자는 것이 아니다. 규제의 칼날이 향해야 할 곳은 고도화된 거대 악이지,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내는 서민들의 소박한 주머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거대 산맥의 그늘에 가려 숨을 쉴 수 없는 골목상권을 위해, 이제는 국가가 통제의 고삐를 늦추고 유연한 신뢰를 회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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