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탐구

[14-1부] 자가면역-서론 | 내 몸이 나를 공격하는 이유, 면역 관용은 어떻게 깨지는가

작성자
biolove2
작성일
2025-09-24 12:45
조회
244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은 지구상에서 가장 정교하고 강력한 군대다. 이 군대의 유일한 임무는 '나(Self)'와 '내가 아닌 것(Non-self)'을 구별하여, '내가 아닌 것'(세균, 바이러스, 외부 침입자)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것이다.

이 위대한 군대가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최우선 원칙이 있다.
"아군에게는 절대로 총구를 겨누지 마라."

우리 면역계가 자기 자신의 건강한 세포와 조직을 '아군'으로 인식하고 공격하지 않는 이 놀라운 상태를 **'면역 관용(Immune Tolerance)'**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만약 이 철통같던 관용의 원칙이 깨진다면?
만약 우리 몸의 군대가 피아(彼我)를 식별하는 능력을 상실하고, 자기 자신의 심장, 관절, 피부, 갑상선을 적으로 간주하여 무차별적인 공격을 개시한다면?

이것이 바로 류마티스 관절염, 루푸스, 다발성 경화증, 하시모토 갑상선염, 건선 등 100여 가지가 넘는 질병의 얼굴을 한, **'자가면역(Autoimmunity)'**이라는 비극적인 내전(內戰)의 실체다.

오늘은 이 끝나지 않는 내전의 서막, 즉 우리 몸의 평화로운 공존 상태였던 '면역 관용'이 어떻게, 그리고 왜 깨지게 되는지, 그 근본적인 원인을 파헤쳐 보겠다. 이 비극의 시작이, 놀랍게도 당신의 '장'에서 시작된 작은 균열 때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1. 평화의 수호자: '면역 관용'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면역 관용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면역세포들이 평생에 걸쳐 학습하고 훈련받는 정교한 교육 시스템의 결과물이다.

중앙 관용 (Central Tolerance): 면역세포의 훈련소인 '흉선(Thymus)'과 '골수(Bone Marrow)'에서, '자기 자신'의 단백질에 강력하게 반응하는 미성숙한 '반란군' T세포와 B세포들을 조기에 색출하여 제거(자살 명령)하는 과정이다.

말초 관용 (Peripheral Tolerance): 이 엄격한 훈련소를 통과했더라도, 일부 반란군 세포들이 현장(말초 조직)으로 나올 수 있다. '말초 관용'은 현장에서 이들이 실제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억제하고 통제하는 2차 안전장치다. 이 과정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조절 T세포(Regulatory T cell, Treg)'**다. Treg 세포는 "진정해, 이 친구는 아군이야!"라고 외치며, 과도한 면역 반응에 브레이크를 거는 '평화 유지군' 역할을 한다.


2. 평화의 붕괴: 무엇이 면역계를 반란군으로 만드는가

그렇다면 이 완벽해 보이는 평화 유지 시스템은 왜 붕괴되는가? 현대 기능의학은 자가면역이라는 내전이 발발하기 위해, 세 가지 핵심적인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한다고 본다.

자가면역의 세 기둥 (The Three Pillars of Autoimmunity):

  1. 유전적 소인 (Genetic Predisposition): 특정 유전자(HLA 유전자 등)를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면역계가 특정 아군을 적으로 오인할 가능성이 다소 높을 수 있다. 이것은 '운명'이 아니라, 단지 '총알'이 장전되어 있을 뿐인 상태다.
  2. 환경적 방아쇠 (Environmental Triggers): 장전된 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역할을 하는 외부 요인들이다. 특정 바이러스 감염(엡스타인-바 바이러스 등), 만성 스트레스, 독소 노출(중금속, 환경호르몬), 특정 약물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3. 장 누수 (Intestinal Permeability):
     
    • 이것이 바로 가장 중요하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핵심적인 열쇠다.
    • 작동 기전: [7-2부]에서 확인했듯, 장벽이 무너져('장 누수') 미소화된 음식물 단백질이나 세균의 독소(LPS)가 혈관으로 침투하면, 우리 몸의 면역계는 이들을 '외부의 적'으로 인식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한다.
    • 논리적 설명: 이 끊임없는 전쟁 상태는, 우리 면역계를 만성적으로 '과흥분(Hyper-reactive)' 상태로 만든다. 평화 유지군(Treg 세포)의 기능은 약화되고, 군대는 항상 긴장하고 예민해져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오인 사격을 할 준비를 하게 된다. 즉, 장 누수는 우리 면역계를 '언제든 내전을 일으킬 수 있는, 예민하고 불안정한 군대'로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가면역질환은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하는 불운한 유전병이 아니다. 그것은 유전적 소인이라는 장전된 총을 가진 사람이, 장 누수라는 허술한 방어 시스템 속에서, 특정 환경적 방아쇠에 노출되었을 때 비로소 벌어지는, 예고된 비극에 가깝다.

이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희망을 준다. 우리는 유전자를 바꿀 수는 없지만, 방아쇠에 대한 노출을 줄이고, 무엇보다도 '장벽'을 수리함으로써 내전의 근본 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는, 이 '자가면역의 세 기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우리 몸을 공격하는지, 그 치명적인 메커니즘을 더 깊이 파헤쳐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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