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탐구

[12-8부] 당뇨 - 합병증1 | 눈, 신장, 신경이 썩어가는 이유, '최종당화산물(AGEs)'의 공격

질병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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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iolove2
작성일
2025-09-23 16:08
조회
169

당뇨병이 진정으로 무서운 이유는, 혈당이 조금 높은 것 그 자체가 아니다. 진짜 공포는, 수년에 걸쳐 소리 없이 진행되다가 한번 발생하면 되돌리기 어려운, 끔찍한 **'합병증'**에 있다.

그중에서도 우리 몸의 가장 가늘고 섬세한 혈관, 즉 **'미세혈관(Microvasculature)'**이 집중적으로 분포된 세 군데는 고혈당의 공격에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치명적으로 무너져 내린다.

  • 눈: 실명의 가장 큰 원인, '당뇨병성 망막병증'
  • 신장: 혈액 투석을 받게 되는 주된 원인, '당뇨병성 신증'
  • 신경: 손발이 저리고 타는 듯한 고통, '당뇨병성 신경병증'

왜 하필 이 세 곳일까? 그리고 혈액 속의 넘쳐나는 설탕은,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이 연약한 조직들을 파괴하는 것일까?

그 모든 비극의 중심에는, 우리가 이미 여러 번 만났던 최악의 노화 독소, **'최종당화-산물(Advanced Glycation End-products, AGEs)'**이 있다. [11-9부]에서 이 독소가 굵은 혈관을 어떻게 늙고 뻣뻣하게 만드는지 보았다면, 오늘 우리는 이 독소가 가장 섬세한 미세혈관을 어떻게 '설탕에 절여' 말 그대로 썩게 만드는지, 그 처참한 공격 과정을 추적해 보겠다.


1. 공격의 시작: '내피세포'의 당화와 미세혈관의 손상

작동 기전:

  1. 설탕 코팅: 만성적인 고혈당 상태에서, 혈액 속의 과도한 포도당은 미세혈관 내벽을 이루는 '내피세포'의 단백질에 달라붙어 '당화(Glycation)'시킨다.
  2. AGEs 생성: 이 당화 과정의 최종 결과물이 바로 AGEs다. AGEs는 혈관 벽에 그대로 쌓여, 혈관의 구조 단백질인 콜라겐과 엘라스틴을 딱딱하게 굳히고(교차 결합), 혈관 벽 자체를 두껍고 투과성이 높은, '새는 혈관(Leaky Vessel)'으로 만들어버린다.
  3. 염증과 산화 스트레스 폭증: [11-9부]에서 확인했듯, AGEs는 면역세포의 RAGE 수용체에 결합하여, 강력한 '염증 반응'과 '산화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이 염증의 불길과 활성산소는 미세혈관을 더욱더 빠른 속도로 파괴한다.

2. 타겟 1: 눈 (망막병증) - 빛을 잃어가는 창문

왜 눈인가: 눈의 가장 안쪽, 빛을 감지하는 '망막'은 우리 몸에서 단위 면적당 산소 소모량이 가장 높은 곳 중 하나이며, 이를 위해 극도로 가늘고 촘촘한 미세혈관 네트워크가 깔려있다.

파괴 과정:

  1. 망막의 미세혈관이 AGEs의 공격으로 손상되고 막히기 시작한다.
  2. 산소 공급이 부족해진 망막은 생존을 위해 "산소가 부족하다!"는 비상 신호(VEGF)를 보내, 급조된 **'신생 혈관'**을 마구 만들어낸다.
  3. 하지만 이 신생 혈관은 매우 약하고 부실하여 쉽게 터지고 출혈을 일으킨다.
  4. 이 반복적인 출혈과 흉터 조직이 망막을 손상시키고, 결국 시력을 잃게 만든다.

3. 타겟 2: 신장 (신증) - 망가지는 필터

왜 신장인가: 신장은 혈액 속의 노폐물을 걸러내는 수백만 개의 미세혈관 덩어리, '사구체'로 이루어진 정교한 필터다.

파괴 과정사구체의 미세혈관이 AGEs와 고혈당의 압력으로 인해 손상되고 두꺼워진다.

  1. 정교했던 필터의 구멍이 점점 커지면서, 원래는 빠져나가면 안 되는 단백질(알부민)이 소변으로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소변 검사에서 '단백뇨'가 나오는 이유)
  2. 손상이 계속되면 필터는 결국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고, 혈액 속 노폐물을 전혀 걸러내지 못하는 '만성 신부전' 상태에 이르게 되어 혈액 투석이 필요하게 된다.

4. 타겟 3: 신경 (신경병증) - 끊어지는 통신선

왜 신경인가: 말초 신경, 특히 우리 몸에서 가장 긴 신경들이 분포한 발끝과 손끝의 신경세포들은, 생존에 필요한 산소와 영양을 **'신경 혈관(Vasa nervorum)'**이라는 아주 미세한 혈관들을 통해 공급받는다.

파괴 과정:

  1. 이 신경 혈관이 AGEs의 공격으로 막히고 파괴된다.
  2. 산소와 영양 공급이 끊긴 신경세포는 서서히 죽어가기 시작한다.
  3. 초기에는 신경이 손상되면서 저림, 찌릿함, 타는 듯한 통증과 같은 '과민 반응'이 나타난다.
  4. 손상이 더욱 진행되면, 신경은 결국 완전히 기능을 상실하여 '감각 상실' 상태에 이른다. 발에 상처가 나도 통증을 느끼지 못해, 상처가 궤양으로 발전하고 결국 발을 절단하게 되는 '당뇨발'의 비극이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결론적으로, 당뇨병성 미세혈관 합병증은 세 가지 다른 질병이 아니다. 그것은 **고혈당과 AGEs라는 동일한 '암살자'가, 우리 몸의 가장 연약한 세 곳을 공격하여 나타나는, '하나의 질병'**이다.

따라서 이 모든 비극을 막는 유일하고 근본적인 방법은, 각각의 증상을 따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암살자의 손에 들린 무기, 즉 '고혈당'을 없애는 것이다. 당신의 혈당이 안정될 때, 비로소 당신의 눈과 신장, 그리고 신경은 파괴의 연쇄 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제, 미세혈관을 넘어, 더 크고 굵은 혈관에서 벌어지는 합병증의 세계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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