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탐구

[11-4부] 침묵 살인-'죽상경화반(Plaque)'의 형성, 상처를 수습하려던 노력이 어떻게 '시한폭탄'으로 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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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iolove2
작성일
2025-09-22 15:12
조회
285

지난 글에서 우리는 비극의 시작을 목격했다. 상처 난 혈관 벽 아래로, 산화되어 괴물이 된 LDL 구급차와, 그를 제거하려다 지방으로 가득 차버린 대식세포(거품세포)들이 무덤처럼 쌓여가는 과정을 말이다.

이 초기 단계의 무덤을 **'지방선(Fatty Streak)'**이라고 부른다. 이는 마치 피부의 작은 뾰루지처럼, 아직은 비교적 무해한 초기 염증 반응이다.

하지만, 만약 이 염증의 근본 원인(고혈당, 산화 스트레스 등)이 해결되지 않고 수년, 수십 년간 지속된다면?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은 이 끝나지 않는 전쟁을 수습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하고, 상처를 덮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선량한 복구 노력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켜, 혈관 속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즉 '죽상경화반(Atherosclerotic Plaque)'**을 만들어내는 끔찍한 결과를 낳는다.

오늘은 이 작은 지방선이 어떻게 거대한 시한폭탄으로 성장해 가는지, 그 복잡하고 치명적인 '플라크 형성'의 과정을 단계별로 파헤쳐 보겠다. 상처를 치유하려던 우리 몸의 숭고한 노력이, 어떻게 스스로를 파괴하는 비극으로 이어지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1단계: 염증의 만성화와 '거품세포'의 축적

  • 작동 기전: 혈관 벽에 상처를 내는 공격(고혈당, 산화 LDL 등)이 멈추지 않으면, 면역계는 계속해서 대식세포를 현장으로 보낸다. 대식세포들은 끊임없이 산화 LDL을 집어삼키다 '거품세포'가 되어 죽어가고, 이 죽은 세포들의 시체가 혈관 벽 아래에 점점 더 많이 쌓여간다.
  • 논리적 설명: 이것은 작은 불씨를 끄지 못해, 계속해서 소방관들이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가 희생되는 것과 같다. 이 희생된 소방관들의 잔해가 쌓여, 플라크의 가장 안쪽 핵인 **'괴사성 핵(Necrotic Core)'**을 형성하게 된다.

2단계: '섬유성 막(Fibrous Cap)'의 형성 - 불안정한 땜질

  • 작동 기전: 우리 몸은 이 위험한 염증 덩어리(괴사성 핵)가 혈액 속으로 터져 나오지 않도록, 그 위를 덮는 보호막을 만들기 시작한다. 혈관의 **'평활근 세포(Smooth Muscle Cells)'**가 동원되어, 콜라겐과 같은 섬유 조직을 뿜어내어 염증 덩어리 위를 덮는 **'섬유성 막'**을 만든다.
  • 논리적 설명: 이것은 부실공사로 무너져 내리는 터널 벽을, 임시방편으로 시멘트를 덧발라 덮어버리는 **'땜질'**과 같다. 이 섬유성 막이 두껍고 안정적일 때는 그나마 괜찮지만, 염증이 계속되면 이 막은 점점 얇고 위태로워진다.

3단계: '석회화(Calcification)' - 굳어버린 혈관

  • 작동 기전: 만성적인 염증 과정 속에서, 플라크 내부에는 칼슘이 침착되기 시작한다. 마치 뼈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부드러웠던 혈관 조직이 딱딱한 돌처럼 굳어가는 것이다.
  • 논리적 설명: 병원에서 CT 촬영을 통해 '관상동맥 석회화 지수'를 측정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석회화 지수가 높다는 것은, 당신의 혈관 안에 이미 오래되고 딱딱한 플라크들이 많이 형성되어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며, 동맥경화가 상당히 진행되었음을 의미한다. 딱딱해진 혈관은 탄력성을 잃고, 혈압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며, 파열될 위험이 커진다.

안정적인 플라크 vs 불안정한 플라크: 시한폭탄의 종류

모든 플라크가 똑같이 위험한 것은 아니다.

안정적인 플라크 (Stable Plaque):

  • 특징: 두꺼운 섬유성 막, 작은 괴사성 핵, 적은 염증 세포.
  • 위험성: 혈관을 서서히 좁혀 협심증 등을 유발할 수는 있지만, 갑자기 터질 위험은 상대적으로 낮다.

불안정한 플라크 (Unstable/Vulnerable Plaque):

  • 특징: 얇고 약한 섬유성 막, 거대한 괴사성 핵, 수많은 활성 염증 세포.
  • 위험성: 이것이 바로 **'시한폭탄'**이다. 내부의 염증 세포들이 섬유성 막을 녹이는 효소(MMPs)를 계속 분비하여, 막이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처럼 위태로운 상태다. 겉으로 보기에는 혈관을 많이 막고 있지 않아도, 훨씬 더 치명적이다.

결론적으로, 동맥경화의 진짜 위험은 혈관이 '얼마나 좁아졌는가'보다, 그 안에 형성된 플라크가 **'얼마나 불안정한가'**에 달려있다. 그리고 그 안정성을 결정하는 열쇠는, 바로 **'염증의 강도'**다. 염증이 계속되는 한, 우리 몸의 복구 노력은 계속해서 불안정한 시한폭탄을 만들어낼 뿐이다.

이제, 이 위태로운 시한폭탄의 뇌관이 마침내 터지는 순간, 즉 심근경색과 뇌졸중이 어떻게 갑자기 우리를 덮치는지, 그 마지막 순간을 추적해 보자.

다음 편에서는, 이 불안정한 플라크가 '파열'되고, 그 자리에 '혈전'이 생겨 혈관을 완전히 막아버리는, 그 긴박한 과정을 파헤쳐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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