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부] 침묵 살인-콜레스테롤의 역할, '구급차'인가 '범인'인가 | '산화된 LDL'의 진실
지난 수십 년간, LDL 콜레스테롤은 '나쁜 콜레스테롤'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심혈관계 질환의 주범으로 공개 수배되었다. 의사들은 우리에게 LDL 수치를 낮추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라고 경고했고, 우리는 콜레스테롤이 많이 든 음식을 피하며 죄책감을 느꼈다.
이 통념에 따르면, LDL은 혈관을 떠돌며 벽에 기름때를 끼게 만드는 악당 그 자체다.
하지만, 만약 LDL의 진짜 임무가 우리 몸을 '치유'하는 것이라면?
만약 LDL이 화재 현장을 악화시키는 '방화범'이 아니라, 부상자를 실어 나르기 위해 출동한 '구급차'라면 이야기는 어떻게 달라질까?
이것이 바로 콜레스테롤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핵심이다. 콜레스테롤은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물질이며, LDL은 이 중요한 물질을 필요한 곳으로 운반하는 배송 트럭(혹은 구급차)의 역할을 한다.
오늘은 왜 LDL 자체가 문제가 아닌지, 그리고 이 성실한 구급차가 어떤 끔찍한 사건을 겪으며 **'산화된 LDL'**이라는 흉악한 범죄자로 변모하게 되는지, 그 충격적인 진실을 파헤쳐 보겠다.
1. 콜레스테롤과 LDL의 진짜 임무
먼저, 콜레스테롤은 결코 '나쁜 물질'이 아니다.
콜레스테롤의 역할:
- 우리 몸 모든 세포막의 구성 성분 (세포의 구조 유지)
- 성호르몬(테스토스테론, 에스트로겐)과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을 만드는 원재료
- 지방의 소화를 돕는 담즙산의 원료
- 햇볕을 받아 비타민 D를 합성하는 재료
- 뇌 기능 유지에 필수적 (뇌의 25%가 콜레스테롤)
문제는, 지질(기름) 성분인 콜레스테롤이 혈액(물)에 녹지 않기 때문에, 이를 운반할 '운송 수단'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지단백(Lipoprotein)'**이며, 그중 하나가 **LDL(저밀도 지단백)**이다.
LDL의 임무: 간에서 만들어진 콜레스테롤과 지방을 싣고, 우리 몸의 모든 세포에게 **"에너지와 수리 재료가 도착했습니다!"**라고 외치며 배달해주는 택배 트럭의 역할을 한다. 특히, 세포에 손상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가 복구 재료를 공급하는 '구급차'이기도 하다.
2. 구급차의 비극: '산화(Oxidation)'라는 교통사고
LDL 자체는 아무런 죄가 없다. 문제는 [11-2부]에서 다룬, **고혈당과 산화 스트레스로 가득한 '위험한 도로(혈관)'**를 이 구급차가 지나갈 때 발생한다.
작동 기전:
- 사건 현장 출동: 혈관 내피세포에 상처와 염증이 생기면, 우리 몸은 그곳을 수리하기 위해 LDL 구급차를 대량으로 출동시킨다.
- 활성산소의 공격: 상처 현장 주변에는 염증 반응으로 인해 엄청난 양의 **'활성산소'**가 발생해 있다. 이 활성산소들이 LDL 구급차를 공격하여, LDL 입자 표면의 지방을 산패시킨다. 이것이 바로 LDL이 **'산화(Oxidation)'**되는 과정이다.
- 고장 난 구급차, '산화 LDL': 산화된 LDL은 더 이상 정상적인 구급차가 아니다. 원래의 기능을 상실하고, 오히려 주변에 염증을 유발하는 매우 유독한 **'괴물 트럭'**으로 변모한다.
논리적 설명:
이것은 마치 신선한 기름이 공기 중에 오래 노출되면 썩고 산패하여 독성을 띠게 되는 것과 같다. 우리 혈관이 '항산화 시스템'이라는 방부제가 부족하고, '활성산소'라는 오염물질이 가득한 환경일 때, 그 안을 지나는 LDL이라는 기름 트럭 역시 산패하고 썩어버리는 것이다.
3. 면역계의 오인: 고장 난 구급차를 적으로 간주하다
우리 몸의 면역계, 특히 **'대식세포(Macrophage)'**라는 청소부 세포는, 정상적인 LDL은 그냥 지나치지만, 이 **'산화된 LDL'**은 외부에서 침입한 세균이나 바이러스처럼 위험한 '적'으로 인식한다.
- 작동 기전: 대식세포는 이 위험한 괴물 트럭(산화 LDL)을 제거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하지만 산화 LDL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대식세포는 포화 상태가 될 때까지 산화 LDL을 먹어치우다가, 결국 지방으로 가득 차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른 **'거품세포(Foam Cell)'**가 되어 혈관 벽 아래에 주저앉아 버린다.
- 논리적 설명: 이 '거품세포'들의 무덤이 바로, 우리가 동맥경화의 주범이라고 불렀던 '죽상경화반(Plaque)'의 시작이다.
결론적으로, 심장병 재판의 진범은 LDL이 아니다. 진범은 LDL을 산화시킨 **'산화 스트레스'**와, 그 환경을 조성한 **'만성 염증'**과 **'고혈당'**이다.
따라서 우리가 진짜 주목해야 할 것은 혈액 속의 '총 LDL 수치'가 아니라, 내 혈관이 얼마나 건강한 환경이어서 LDL이 산화되지 않고 안전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제, 고장 난 구급차와 이를 처리하려던 의료진이 뒤엉켜 만들어진 이 끔찍한 '교통사고 현장'이 어떻게 시한폭탄으로 변해가는지, 그 다음 단계를 추적해 보자.
다음 편에서는, 이 '죽상경화반(Plaque)'이 어떻게 형성되고 자라나며, 우리 몸의 면역계가 어떻게 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지 알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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