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부] 피부건강 | 건선, 피부 위 붉은 갑옷의 정체는 '자가면역'의 비극이다
두꺼운 각질과 붉은 반점이 온몸을 갑옷처럼 뒤덮는 병, '건선(Psoriasis)'. 아토피가 참을 수 없는 '가려움'과의 전쟁이라면, 건선은 따가운 통증과 함께 찾아오는 지독한 '낙인'과의 싸움이다. 주변의 오해 섞인 시선과 사회적 위축감은 환자들의 삶의 질을 송두리째 무너뜨린다.
오랫동안 건선은 단순히 '피부 세포가 너무 빨리 자라는 병' 정도로만 알려져 왔다. 정상 피부 세포가 약 28일에 걸쳐 생성되고 탈락하는 반면, 건선 환자의 피부 세포는 단 3~4일 만에 과도하게 증식하여 미처 떨어져 나가지 못하고 쌓여 두꺼운 각질층을 형성한다.
하지만 이것은 결과일 뿐, 원인이 아니다.
"대체 무엇이, 피부 세포에게 이토록 미친 듯이 분열하라고 명령하는가?"
그 배후에는 아토피보다 더 근본적이고 심각한 면역 시스템의 오작동이 숨어있다. 바로 **'자가면역(Autoimmunity)'**이다.
자가면역이란, 우리 몸을 지켜야 할 면역세포가 무엇이 잘못됐는지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건강한 세포를 적으로 간주하여 공격하는 비극적인 상태를 말한다. 류마티스 관절염이 관절을 공격하듯, 건선은 우리 면역계가 '자기 자신의 피부 세포'를 적으로 인식하고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오늘은 이 붉은 갑옷의 정체가 단순한 피부병이 아닌, 전신적인 '자가면역질환'의 신호임을 명확히 하고, 우리 몸의 군대가 왜 스스로에게 총구를 겨누게 되었는지 그 기전을 파헤쳐 보겠다.
1. 면역계의 쿠데타: T세포의 오인 사격
아토피의 주범이 'Th2 세포'의 과잉 반응이었다면, **건선의 주범은 'Th1'과 'Th17'이라는 또 다른 T세포 지휘관들의 '쿠데타'**다.
작동 기전:
- 방아쇠(Trigger) 작동: 유전적 소인을 가진 사람에게 스트레스, 감염(특히 연쇄상구균 편도선염), 특정 약물, 피부 손상과 같은 '방아쇠'가 당겨진다.
- T세포의 오인: 이 방아쇠로 인해, 면역계는 우리 몸의 정상적인 '피부 각질형성세포(Keratinocyte)'를 마치 외부에서 침입한 적인 것처럼 오인하기 시작한다.
- 염증 사이토카인 분비: 활성화된 T세포(Th1, Th17)들은 피부로 몰려가 TNF-alpha, 인터루킨-17, 인터루킨-23과 같은 강력한 염증성 사이토카인을 대량으로 분비한다. 마치 적진에 포격을 퍼붓는 것과 같다.
- 피부 세포 과다 증식: 이 염증 포격 신호는 피부 각질형성세포에게 "지금은 비상사태다! 적의 공격으로 피부가 손상되고 있으니, 최대한 빨리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 방어벽을 복구하라!"는 잘못된 명령으로 전달된다.
- 건선 병변 형성: 이 명령을 받은 피부 세포들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분열하고 증식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혈관들이 자라나고(붉은 반점의 원인), 미처 성숙하지 못한 각질 세포들이 하얗게 쌓여(두꺼운 각질, 인설) 우리가 보는 '건선' 병변이 만들어진다.
논리적 설명:
건선은 피부 세포가 스스로 미쳐서 빨리 자라는 병이 아니다. 그것은 **면역계의 '오인 사격'으로 인해 겁에 질린 피부 세포들이,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방어벽을 쌓아 올리는 처절한 '전쟁의 결과물'**인 것이다.
2. 건선은 피부병이 아닌 '전신 혈관 염증 질환'이다
이 전쟁이 피부에서만 벌어진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기존 주장과의 연결성: 과거에는 건선을 피부에 국한된 질병으로 보았지만, 현대 의학은 이를 **'전신 혈관 염증 질환(Systemic Vascular Inflammatory Disease)'**으로 규정한다.
논리적 설명: 피부에서 시작된 염증 사이토카인들은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이 만성적인 염증은 혈관 내벽에 손상을 입히고, 인슐린 저항성을 유발하며, 심장, 간, 관절 등 전신의 장기를 공격한다.
이것이 바로 건선 환자에게서 건선성 관절염, 심혈관 질환(심장마비, 뇌졸중), 대사 증후군, 당뇨병, 비알코올성 지방간의 발병률이 일반인에 비해 현저히 높은 이유다. 피부의 붉은 반점은, 우리 몸 전체가 거대한 염증의 불길에 휩싸여 있다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건선을 치료한다는 것은 단순히 피부의 각질을 제거하는 행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것은 내 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을 멈추게 하는 것, 즉 면역계의 혼란을 바로잡고 '전신적인 염증'의 불길을 끄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장 건강 회복을 통한 면역계 안정, 항염증 식단, 스트레스 관리 등, 우리 몸 전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바라보는 통합적인 접근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아토피와 건선이라는, 면역계 혼란이 빚어낸 두 가지 대표적인 피부 질환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피부 트러블에는 또 다른 강력한 배후 조종자가 있다. 바로 우리의 감정과 스트레스다.
다음 편에서는, 스트레스가 어떻게 피부 장벽을 직접적으로 파괴하고, 습진과 지루성 피부염을 악화시키는지 그 기전을 파헤쳐 보겠다.
#건선 #자가면역질환 #피부질환 #T세포 #사이토카인 #만성염증 #건선성관절염 #전신질환 #면역계 #이너뷰티 #피부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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