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탐구

[6-4부] 신경계 질환-'장-뇌 축'의 역습, 파킨슨병은 장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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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iolove2
작성일
2025-09-21 13:19
조회
158

몸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떨리고, 근육은 돌처럼 굳어가며, 걸음걸이는 점점 불안정해지는 병, '파킨슨병'. 이 병의 직접적인 원인은 뇌의 깊숙한 곳 '흑질(Substantia nigra)'에 있는 '도파민' 생성 신경세포가 서서히 죽어가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다.

도파민은 우리의 움직임을 부드럽고 정교하게 조절하는 핵심적인 신경전달물질이다. 이 도파민 공장이 파괴되면서, 우리 몸의 운동 시스템 전체가 마비되는 것이다.

여기서 의학계의 가장 오래된 질문이 등장한다.
"대체 무엇이, 왜, 뇌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이 특정 신경세포들만 골라서 죽이는가?"

오랫동안 우리는 그 원인을 유전, 환경 독소, 혹은 단순 노화에서 찾으려 했다. 하지만 최근 10여 년간 발표된 충격적인 연구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바로 우리 몸의 가장 아래쪽, **'장(Gut)'**이다.

파킨슨병 환자 대부분이 운동 증상이 나타나기 수년, 혹은 10여 년 전부터 만성 변비, 소화 불량, 후각 상실과 같은 증상을 먼저 경험한다는 사실에 주목한 과학자들은, 이 모든 비극이 장에서 시작되어 뇌로 '올라온다'는 혁명적인 가설을 세웠다.

오늘은 파킨슨병의 씨앗이 어떻게 장에서 처음 싹트고, 우리 몸의 고속도로인 '미주신경'을 타고 뇌의 총사령부까지 침투하는지, 그 섬뜩한 '장-뇌 축(Gut-Brain Axis)'의 역습을 추적해 보겠다.


1. 파킨슨병의 주범: '알파-시누클레인' 단백질의 반란

파킨슨병 환자의 뇌세포 안에서는 **'알파-시누클레인(Alpha-synuclein)'**이라는 단백질이 잘못 접히고 서로 엉겨 붙어 **'루이소체(Lewy bodies)'**라는 독성 덩어리를 형성하는 것이 발견된다. 이 루이소체가 바로 도파민 신경세포를 죽이는 직접적인 암살자다.

핵심 질문: 이 잘못 접힌 알파-시누클레인은 과연 뇌에서 처음 만들어지는 것일까?


2. '브라크 가설(Braak's Hypothesis)': 비극의 시작점은 장이다

독일의 해부학자 하이코 브라크(Heiko Braak)는 파킨슨병으로 사망한 환자들의 뇌를 부검하며 놀라운 패턴을 발견했다. 루이소체가 뇌의 특정 부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마치 감염이 퍼져나가듯 일정한 경로를 따라 퍼져나간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작동 기전 (브라크 가설):

  1. 1단계 (장 혹은 코): 어떤 외부의 유발 인자(특정 바이러스, 독소, 장내 유해균 등)가 장의 신경세포나 코의 후각 신경세포를 자극하여, 이곳에서 최초의 '잘못 접힌 알파-시누클레인'이 만들어진다.
  2. 2단계 (미주신경 상행): 장에서 만들어진 이 '씨앗' 단백질은 장과 뇌를 직접 연결하는 고속도로인 **'미주신경(Vagus nerve)'**을 타고, 마치 프리온 단백질처럼 주변의 정상 알파-시누클레인 단백질을 자신과 같은 비정상적인 형태로 감염시키며 위로, 위로 올라간다.
  3. 3단계 (뇌간 침투): 마침내 뇌의 가장 아래쪽 관문인 '뇌간(Brainstem)'에 도달한다. 파킨슨병 환자들이 겪는 수면 장애(렘수면 행동장애)는 바로 이 단계에서 뇌간이 손상되기 때문에 나타난다.
  4. 4단계 (흑질 파괴): 마침내 뇌의 중심부, '흑질'에 도달하여 도파민 신경세포를 대량으로 파괴하기 시작한다. 몸이 떨리고 굳어가는 '운동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이미 이 단계에서 흑질의 신경세포 50~70%가 파괴된 후이다.

논리적 설명:
이 가설에 따르면, 우리가 파킨슨병의 증상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장에서 시작된 전쟁이 10여 년간 진행되어 뇌의 총사령부까지 함락된 상태인 것이다. 만성 변비와 소화 불량은 단순히 소화기 문제가 아니라, 뇌에서 벌어질 끔찍한 비극을 예고하는 '최초의 경고 신호'였던 셈이다.


결론적으로, 파킨슨병은 더 이상 뇌만의 질환이 아니다. 그것은 장내 미생물 불균형(Dysbiosis)과 장 염증, 장 누수가 빚어낸 **'전신적인 네트워크 질환'**이다. 뇌를 살리고 싶다면, 우리는 먼저 장을 고쳐야만 한다. 장내 환경을 건강하게 만들고, 장 누수를 막아 '씨앗' 단백질이 애초에 생성되지 않도록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파킨슨병의 진행을 늦추거나 예방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전략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알츠하이머와 파킨슨이라는 신경계 질환의 두 거대한 산을 넘었다. 하지만 뇌의 비극은 질병뿐만이 아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 발생하는 '뇌졸중' 역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다.

다음 편에서는, 한번 죽은 뇌세포는 결코 되살릴 수 없다는 절망적인 통념에 맞서, 우리 뇌가 가진 놀라운 회복 능력, **'뇌가소성(Neuroplasticity)'**의 기적에 대해 알아보겠다.


#파킨슨병 #장뇌축 #알파시누클레인 #루이소체 #미주신경 #브라크가설 #장건강 #뇌질환 #신경계질환 #만성변비 #도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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