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탐구

[노인 건강 2부] '분절된 의료'의 비극 | 노인 한 명에 의사 셋, 약은 여덟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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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iolove2
작성일
2025-09-18 09:39
조회
177

원문자료 : 바로가기

82세의 최씨 할머니. 고혈압, 당뇨, 허리 통증, 불면증으로 각기 다른 4개의 과(科)에서 3명의 다른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매일 8가지의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감기약을 추가로 처방받은 그날 밤, 어지럼증으로 넘어져 고관절이 부러졌다.

입원 후에는 섬망, 위장 출혈, 욕창, 요실금이 연이어 발생했고, 결국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요양원으로, 그리고 요양시설로 옮겨져 생을 마감했다.

이 슬픈 이야기는, 첨부된 대한의사협회지에 실린 한 노인의학 전문가가 제시한 실제 사례다.

이것은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

이 비극의 진짜 범인은, 최씨 할머니나 그녀의 가족이 아니다.

바로, 노인을 '하나의 인간'으로 보지 않고, **'질병의 집합체'**로만 취급하며, 각 신체 부위를 나누어 진료하는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의 **'분절된(Fragmented) 의료'**라는 구조적인 문제다.


'전문화'의 저주: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의사들

현실: 우리는 고혈압은 순환기내과, 당뇨는 내분비내과, 허리 통증은 정형외과, 불면증은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각 분야의 '전문가'에게 진료를 받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논문의 지적: 하지만 노인에게는 여러 만성질환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이 '질병 중심의 전문화' 시스템은, 노인 환자에게 다음과 같은 재앙을 낳는다.

① 다약제 복용 (Polypharmacy): 3명의 의사는 서로 다른 환자의 전체적인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각자 자신의 분야에 해당하는 '표준 치료 지침'에 따라 약을 처방한다. 그 결과, 최씨 할머니처럼 수많은 약을 중복으로, 또는 부적절하게 복용하게 되어, 약물 부작용(어지럼증, 속 쓰림 등)의 위험이 극도로 높아진다.

② 노인병증후군(Geriatric Syndrome)의 방치: 낙상, 섬망, 요실금, 쇠약(Frailty)과 같은,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하는 '노인병증후군'은, 특정 과(科)의 전문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의사로부터 외면당하고 방치된다.


'노인의학 전문가'의 부재: 노인은 '작은 어른'이 아니다

  • 소아과'는 있는데, '노인과'는 없다: 우리는 아이가 어른과 다르다는 것을 알기에, '소아과'라는 전문 분야를 두어 아이의 성장과 발달 전체를 종합적으로 관리한다.
  • 논문의 절규: 하지만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은, 노인을 그저 '나이 든 성인'으로만 취급한다. 노화로 인한 신체 기능 저하, 복합 만성질환, 다약제 복용의 위험성 등 '노인병'의 고유한 특성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관리할 **'노인의학 전문가(Geriatrician)'**를 양성하는 시스템 자체가 전무하다. 의과대학에서조차 노인의학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건강수명'의 역설: 오래 살지만, 아프게 산다

  • 데이터의 증거: 논문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기대수명'은 83.5세로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질병 없이 건강하게 사는 '건강수명'은 65.8세에 불과하다. 남성은 15년, 여성은 19년이라는 긴 세월을 질병과 함께 고통받으며 살아간다는 의미다.
  • 원인: 바로 이 '분절된 의료' 시스템이, 질병의 '증상'을 약으로 억제하여 생명만 연장시킬 뿐, 환자의 '기능 유지'와 '삶의 질'이라는 더 중요한 목표를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최씨 할머니를 죽음으로 내몬 진짜 범인은 '고관절 골절'이 아니었다.

  1. 첫 번째 범인: 각기 다른 의사들이 처방한 약들의 상호작용을 종합적으로 관리하지 못한 '다약제 복용'.
  2. 두 번째 범인: 입원 후 발생할 수 있는 섬망이나 욕창 같은 '노인병증후군'을 예측하고 예방하지 못한 '노인의학 지식의 부재'.
  3. 세 번째 범인: 이 모든 것을 총괄하여, 환자를 '하나의 인간'으로 바라보고 관리해 줄 '노인 주치의' 시스템의 부재.

이 논문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의사 증원' 논쟁이 얼마나 핵심을 벗어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단순히 의사의 '숫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노인 인구 폭발이라는 거대한 쓰나미 앞에서, 지금의 '분절된' 의료 시스템을, 노인의 삶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적'인 노인 의료 시스템으로 바꾸는 '질적인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제2, 제3의 최씨 할머니 비극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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