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안은 위암 내력이라...", "어머니가 유방암이셨는데, 나도 걸릴 확률이 높겠지?" 암 진단을 받은 많은 사람이, 마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나 '유전적 저주'를 물려받은 것처럼 좌절하고 체념한다. 실제로, 안젤리나 졸리가 유방암 예방을 위해 유방을 절제하게 만들었던 'BRCA 유전자'처럼, 특정 암의 발병 위험을 극도로 높이는 '암 유전자'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대 유전학과 후성유전학이 밝혀낸 놀라운 진실은, 대부분의 암은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유전자'가 아닌, '후천적인 생활 습관'에 의해 유전자의 스위치가 잘못 켜지고 꺼지면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당신의 유전자는 당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설계도'가 아니라, 당신의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의 악보'일 뿐이다.

'암 유전자'의 두 얼굴: '엑셀'과 '브레이크'

우리 몸의 모든 세포 안에는, 자동차의 엑셀과 브레이크처럼, 세포의 성장을 조절하는 두 종류의 핵심 유전자가 존재한다. 암은 이 두 시스템이 동시에 고장 났을 때 발생한다.

1. 종양유전자 (Oncogene) - '고장 난 엑셀'

• • 정상 상태 (원시종양유전자): 평상시 이 유전자는 세포의 성장과 분열을 촉진하는 '엑셀' 역할을 한다. 필요할 때만 밟고, 필요 없으면 발을 떼는, 통제 가능한 엑셀이다.
  • 돌연변이: 발암물질이나 바이러스 등의 공격으로 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마치 엑셀 페달이 바닥에 눌어붙어버린 것처럼, 세포에게 "멈추지 말고, 계속 분열해!"라는 성장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게 된다.

2. 종양억제유전자 (Tumor Suppressor Gene) - '파괴된 브레이크'

• • 정상 상태: 이 유전자는 손상된 DNA를 수리하거나, 수리가 불가능할 경우 세포 자살(아폏토시스)을 명령하여, 비정상적인 세포가 암세포로 발전하는 것을 막는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유명한 p53 유전자 등)
  • 돌연변이: 이 유전자가 손상되면, 우리 몸은 브레이크가 파열된 자동차처럼, 이상 세포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최후의 안전장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결론적으로, 암은 '고장 난 엑셀(종양유전자 활성화)'과 '파괴된 브레이크(종양억제유전자 비활성화)'가 동시에 일어났을 때 발생하는, 최악의 '세포 교통사고'다.

'유전성 암' vs '산발성 암': 운명과 선택의 비율

그렇다면, 이 고장 난 유전자를 부모로부터 직접 물려받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유전성 암 (Hereditary Cancer):

• • 비율: 전체 암 발생의 **약 5~10%**에 불과하다.
  • 특징: 태어날 때부터 이미 '고장 난 브레이크(종양억제유전자 변이)'를 하나 물려받은 상태다. 따라서, 남들보다 훨씬 젊은 나이에, 여러 장기에, 그리고 대를 이어 암이 발생할 확률이 매우 높다. (유방암의 BRCA1/2, 대장암의 린치 증후군 등)

산발성 암 (Sporadic Cancer):

• • 비율: 전체 암 발생의 **90~95%**를 차지하는, 대부분의 암이다.
  • 특징: 건강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살아가는 동안 흡연, 잘못된 식습관, 바이러스 감염, 환경 독소, 만성 염증 등 수많은 '후천적인 요인'에 의해, 멀쩡했던 엑셀과 브레이크 유전자가 후천적으로 손상되어 발생한다.

'후성유전학(Epigenetics)', 운명을 바꾸는 열쇠

더 놀라운 것은, 최근 의학계의 가장 뜨거운 화두인 '후성유전학'이 밝혀낸 사실이다.

• 후성유전학이란?: DNA 설계도(유전자) 자체는 변하지 않더라도, **어떤 유전자의 '스위치'를 켜고(ON), 어떤 유전자의 '스위치'를 끌지(OFF)**는, 우리의 **'생활 습관'**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는 학문이다.
• 희망의 메시지: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설령 당신이 부모로부터 좋지 않은 '암 유전자'를 물려받았더라도, 당신의 '선택'—무엇을 먹고, 어떻게 운동하며, 어떻게 스트레스를 관리하는가—을 통해, 그 위험한 유전자의 '스위치를 꺼버리거나(OFF)', 암을 억제하는 좋은 유전자의 **'스위치를 켤(ON) 수 있다'**는 것이다.
• 암을 끄는 스위치들: 우리가 이미 살펴본, 항염증 식단, 규칙적인 운동, 깊은 수면, 명상 등은, 단순히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을 넘어, 우리 유전자의 발현 자체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가장 강력한 '후성유전학적 개입'이다.

결론적으로, 암은 극히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다. 그것은 대부분, 우리가 살아온 삶의 '습관'이 나의 유전자에 남긴 '흔적'이다. 유전자는 총알을 장전할 뿐,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바로 당신의 '생활 습관'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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