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2월, 대한민국은 차가운 겨울을 맞고 있었다. IMF 구제금융이라는 국가 부도의 치욕 속에서, 온 나라는 절망과 불안에 휩싸였다. 바로 이 최악의 위기 속에서,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40년 정치 인생', '4번의 도전'.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빨갱이'라는 낡은 색깔론에 맞서 싸워온 인동초(忍冬草) 김대중. 그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절박함으로, 자신의 오랜 숙적이자 지역적 라이벌이었던 김종필과 손을 잡는 'DJP 연합'이라는 충격적인 승부수를 던졌다. 마침내,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선거를 통한 **'수평적 정권교체'**라는 위대한 역사를 쓰며 대통령에 당선된다. 하지만 그가 물려받은 것은 승리의 영광이 아니라, 완전히 거덜 난 나라의 금고와, '여소야대'라는 험난한 정치 지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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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수(四修)의 도전과 'DJP 연합'이라는 승부수

세 번의 실패: 김대중은 1971년(박정희), 1987년(노태우), 1992년(김영삼) 대선에서 연이어 패배했다. 특히 1987년 김영삼과의 후보 단일화 실패는 그에게 깊은 상처로 남았다.

'준비된 대통령' 이미지: 1992년 대선 패배 후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그는, 귀국 후 '아태평화재단'을 설립하며, 외환위기를 예견하는 등 경제와 외교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준비된 대통령'의 이미지를 구축해 나갔다.

'DJP 연합'이라는 파격:

• 배경: 당시의 정치 구도는, 영남을 기반으로 한 거대 여당 '한나라당'(이회창 후보)과, 호남을 기반으로 한 '새정치국민회의'(김대중 후보), 그리고 충청을 기반으로 한 '자유민주연합'(김종필 후보)의 3자 구도였다.
• 연합의 내용: 김대중은 당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박정희 정권의 2인자이자 자신의 오랜 정적이었던 **김종필(JP)**과 손을 잡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성사시킨다. 주요 내용은 **'내각제 개헌'**과 **'김종필의 국무총리 임명'**을 약속하는 것이었다.
• 효과: 이 연합을 통해, 김대중은 '호남'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넘어 '충청'의 표를 흡수할 수 있었고, '급진적인 좌파'라는 이미지를 희석시키며 중도 보수층까지 끌어안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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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평적 정권교체', 그 위대한 의미

선거 결과: 1997년 12월 18일, 김대중 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불과 1.5%(약 40만 표)라는 박빙의 차이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다.

'수평적 정권교체'란?:

• 이전까지 대한민국의 정권교체는 4.19 혁명이나 12.12 군사반란과 같은 '수직적'이고 비정상적인 방식으로만 이루어졌다.
• 김대중의 당선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초로, 선거라는 평화적인 절차를 통해 '여당'에서 '야당'으로 정권이 이양된 '수평적 정권교체'**였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가 한 단계 더 성숙했음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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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소야대'라는 험난한 현실

하지만 당선의 기쁨도 잠시, 'DJ'라는 이름의 선장이 이끌어야 할 대한민국호는, 당장이라도 침몰할 듯한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경제적 위기: 국고는 텅 비었고, 외환보유고는 바닥났으며, 기업들은 연쇄적으로 부도나고 있었다. IMF는 고강도의 구조조정을 매일같이 압박해왔다.

정치적 위기, '여소야대(與小野大)':

• 대통령은 야당(새정치국민회의) 출신이었지만, 국회의 과반 의석은 여전히 거대 야당이 된 '한나라당'이 차지하고 있었다.
• 이는 IMF 위기 극복을 위한 각종 개혁 법안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사사건건 한나라당의 발목잡기와 정치적 공세에 시달려야 함을 의미했다.
• 또한, DJP 연합의 파트너였던 김종필과 자민련의 협조를 계속해서 구해야 하는 불안정한 연립 정권의 형태였다.

이처럼, 김대중 대통령은 국가 부도라는 최악의 경제 위기와, 여소야대라는 최악의 정치 위기라는 이중의 족쇄를 찬 채, '국민의 정부'라는 험난한 항해를 시작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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