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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로" | 김영삼의 3당 합당, 명분과 실리의 승부수

작성자
biolove2
작성일
2025-09-13 15:02
조회
138
1987년 6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지만, 야권의 분열로 군부 정권의 후계자인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된 현실. 대한민국은 '여소야대(與小野大)'라는 불안정한 정치 지형 속에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으로 들어섰다. 바로 이 교착 상태를 깨뜨리기 위해, 야당의 거목 김영삼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충격적인 승부수를 던진다.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로 들어간다"는 명분 아래, 어제의 적이었던 노태우의 민정당, 김종필의 공화당과 손을 잡고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민자당)'**을 창당한 것이다(1990년 1월 22일). 이것은 과연 민주주의를 위한 위대한 결단이었을까, 아니면 대통령이 되기 위한 권력욕이 빚어낸 '정치적 야합'이었을까.



배경: '여소야대'의 한계와 김영삼의 딜레마

  • 여소야대 정국: 1988년에 치러진 13대 총선에서, 노태우의 민정당은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반면,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대중의 평화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라는 '3당 야권'이 국회 다수를 차지했다.
  • 국정 마비와 '5공 청산' 압박: 야권은 이 '여소야대'를 무기로, '5공 비리 청문회'를 열어 전두환 정권의 비리를 파헤치고, 노태우 정부를 끊임없이 압박했다. 노태우 대통령 입장에서는 국정 운영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 김영삼의 딜레마: 김영삼 역시 고민에 빠졌다. 3당 야권 체제하에서는 다음 대선에서도 김대중과의 후보 단일화가 불투명했고,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에게는 이 판을 완전히 뒤흔들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3당 합당'이라는 충격적인 결단

밀실 협상: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 군부 독재 세력, 민주화 투쟁의 상징, 그리고 박정희 유신 세력의 후예라는, 도저히 한 배를 탈 수 없을 것 같았던 세 명의 정치 거물은, 각자의 정치적 계산 아래 비밀리에 손을 잡기로 합의한다.

합당의 명분과 실리:
    • 노태우: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한 '거대 여당' 확보.
    • 김영삼: 확실한 '차기 대권 주자'의 입지 확보.
    • 김종필: 정치적 생명 연장.
명분: 그들은 "구시대적인 지역 구도와 3당 체제를 극복하고, 안정적인 의회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구국의 결단"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웠다.



'야합'이라는 비판과 민주 진영의 분열

  • "이의 있습니다! 반대합니다!": 3당 합당 소식에,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내부에서는 격렬한 반발이 터져 나왔다. 특히, 당시 초선 의원이었던 노무현은 합당을 결의하는 회의장에서 "이의 있습니다! 반대 토론을 해야 합니다!"라고 외치며, 군부 독재 세력과의 야합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 새로운 야당의 탄생: 결국 노무현, 이기택 등 합당을 거부한 ' principled한' 의원들은 통일민주당을 탈당하여, 김대중의 평화민주당과 함께 새로운 야당 **'민주당'**을 창당하게 된다.
  • 역사적 의미: 이 3당 합당은, 1987년 6월 항쟁 때까지만 해도 '독재 타도'라는 하나의 목표 아래 뭉쳤던 민주화 운동 세력이, 현실 정치의 벽 앞에서 완전히 둘로 쪼개지는 결정적인 분기점이 되었다. 김영삼을 따르는 세력과, 김대중-노무현을 따르는 세력의 대립 구도는, 이후 30년간 이어질 대한민국 정치 지형의 원형이 되었다.



결과: 대통령 김영삼의 탄생과 '문민정부'

  • 대통령 당선: 김영삼은 3당 합당으로 만들어진 거대 여당 '민자당'의 후보로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김대중을 꺾고 마침내 대통령의 꿈을 이룬다.
  • '문민정부(文民政府)'의 출범: 그의 정부는, 30여 년간 이어져 온 군부 독재의 시대를 끝내고, '문민(文民,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 이끄는 최초의 정부라는 점에서 큰 역사적 의미를 가졌다.
  • 개혁과 한계: 대통령이 된 김영삼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손잡았던 군부 세력의 심장부인 '하나회'를 척결하고,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는 등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다. 하지만 그의 통치는, 임기 말에 터진 **'IMF 외환위기'**라는 국가 부도 사태로 인해, 결국 실패한 정부라는 오명을 쓰고 막을 내리게 된다.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던 김영삼의 승부수. 그는 결국 호랑이를 잡고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명분과 동지들을 잃었다는 '야합'의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의 선택은, 오늘날까지도 '정치에서 명분과 실리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라는 어려운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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