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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민주주의를 얼어붙게 한 10월의 서릿발

역사
작성자
biolove2
작성일
2025-09-13 14:16
조회
119
1971년 대통령 선거. 3선 개헌이라는 무리수를 통해 출마한 박정희는, 젊은 야당 지도자 김대중에게 간신히 승리하며 충격에 빠진다. 더 이상 정상적인 선거로는 자신의 장기 집권을 보장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마침내 헌법 위에 군림하는 '괴물'이 되기로 결심한다.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는 국회를 해산하고, 모든 정치 활동을 금지시키는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기만적인 이름 아래 자신의 영구 집권을 위한 **'유신(維新) 헌법'**을 공포한다. 이 '10월 유신'은, 4.19 혁명으로 쟁취했던 민주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리고, 대한민국을 대통령 한 사람의 의지가 곧 법이 되는, 춥고 어두운 '독재의 왕국'으로 전락시킨, 현대사 최악의 '친위 쿠데타'였다.



'유신 헌법', 무엇이 문제였나?: 제왕적 대통령의 탄생

유신 헌법의 모든 조항은, 오직 대통령 한 사람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부여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① 종신 집권의 길 (통일주체국민회의):
    •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는 '직선제'를 폐지하고, 사실상 대통령의 거수기 노릇을 하는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기구에서 간접 선거로 뽑도록 했다.
    • 임기는 6년이었지만, 연임 제한 규정이 없어 사실상 죽을 때까지 대통령을 할 수 있는 '종신 집권'이 가능해졌다.
② 삼권분립의 파괴:
    • 국회 해산권: 대통령이 언제든지 국회를 해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 국회의원 1/3 추천권: 국회의원 정수의 1/3을 대통령이 추천하는 '유신정우회(유정회)' 소속 의원으로 채울 수 있게 하여, 국회를 완벽한 '시녀'로 만들었다.
    • 모든 법관 임명권: 대법원장을 포함한 모든 판사를 대통령이 임명하게 하여, 사법부의 독립을 완전히 짓밟았다.
③ 국민의 기본권 박탈 ('긴급조치권'):
    • 가장 악랄한 조항. "국가 안보나 사회 안녕 질서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대통령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시키는 '긴급조치'**를 발동할 수 있었다.
    • 이 '긴급조치'는 헌법보다도 위에 있는, 그야말로 제왕적인 권력이었다.



'긴급조치' 시대, 숨 막히는 공포 정치

유신 체제 7년 동안, 박정희는 총 9차례에 걸쳐 '긴급조치'를 발동하며, 자신을 비판하는 모든 목소리를 짓밟았다.

긴급조치 1호 (1974년): 유신 헌법을 부정, 비방, 왜곡, 개정 요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 (위반 시 영장 없이 체포, 15년 이하의 징역)

긴급조치 9호 (1975년): 1호의 내용을 포함하여, 유신 체제에 대한 학생 시위, 집회, 언론 보도를 모두 금지하는, 사실상 '유신 헌법 비판 금지법'의 최종판.

결과:
  • 막걸리 집에서 "요즘 살기 힘들다"고 푸념만 해도, 중앙정보부(KCIA)에 끌려가 '유신 비방죄'로 옥고를 치렀다.
  • 수많은 대학생과 지식인, 종교인들이 투옥되었고, 대학은 수시로 휴교령이 내려졌다.
  • 언론은 철저히 통제되어, 신문과 방송은 매일 '박정희 찬양'과 '정부 홍보' 기사만을 내보내는 '앵무새'로 전락했다.



저항의 불꽃, 그리고 독재자의 최후

하지만 이 끔찍한 암흑기 속에서도, 저항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 민주화 운동: 김대중 납치 사건, 장준하 의문사, YH 무역 여공 사건, 김영삼 의원직 제명 사건 등, 정권의 탄압이 거세질수록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들의 열망은 더욱더 뜨겁게 타올랐다.
  • 부마민주항쟁 (1979년 10월): 김영삼 제명 사건을 계기로, 부산과 마산 지역의 학생과 시민들이 "유신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는 유신 체제의 근간을 뒤흔든 결정적인 저항이었다.
  • 10.26 사태 (1979년 10월 26일): 부마항쟁의 처리 방식을 두고, 강경 진압을 주장하던 차지철 경호실장과 온건한 수습을 주장하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사이에 갈등이 폭발했다. 결국 10월 26일 밤,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는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며, 박정희와 차지철을 권총으로 쏘아 살해한다.
  • 결과: 18년간 이어졌던 철권통치는, 자신의 가장 충직한 심복의 총탄에 의해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눈부신 경제 성장의 대가로,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라는 영혼을 팔아야만 했던 시대. 유신 독재의 7년은, 우리에게 경제 발전만큼이나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피로써 가르쳐준, 잊어서는 안 될 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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