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외교.역사

고려의 황혼, 조선의 여명 | 썩어가는 제국과 새로운 설계자들

역사
작성자
biolove2
작성일
2025-09-12 11:28
조회
107

무신정권 100년과 몽골과의 30년 전쟁. 거대한 폭풍우를 견뎌낸 고려라는 거목은, 속부터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공민왕과 신돈의 개혁이라는 마지막 수술마저 실패로 돌아간 14세기 말, 고려는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 세기말적 혼돈에 빠져들었다. 밖으로는 왜구와 홍건적이 끊임없이 국경을 유린했고, 안으로는 부패한 권문세족들이 나라의 모든 부와 권력을 독점한 채 백성의 고혈을 빨았다. 바로 이 절망의 땅에서, 두 개의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하나는 전장을 휩쓰는 무력(武力)의 태양, 신흥 무장 이성계.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성리학이라는 새로운 사상으로 무장한 지력(智力)의 태양, 급진파 사대부 정도전. 썩어가는 고려의 황혼 속에서, 이들이 꿈꾸는 새로운 나라, 조선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고려'라는 이름의 난파선: 세기말의 풍경

  • 권문세족의 탐욕:원나라에 부역하며 성장한 권문세족들은, 나라의 토지 대부분을 불법적으로 차지하는 '대농장(大農莊)'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세금 한 푼 내지 않았고, 수많은 양민을 억지로 노비로 만들어 부를 축적했다. 국가의 재정은 바닥났고, 백성들은 굶주림에 내몰렸다.
  • '가짜 왜구'의 출몰:왜구의 노략질이 극심해지자, 권문세족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사병을 '가짜 왜구'로 위장시켜 백성들의 땅과 재산을 빼앗는 끔찍한 만행까지 저질렀다.
  • 정치적 무능과 타락:왕은 허수아비로 전락했고, 권문세족들은 뇌물을 통해 관직을 사고팔며 국정을 농단했다. 불교계마저 타락하여, 사찰은 거대한 지주가 되어 고리대금업으로 백성을 착취했다. 나라는 안팎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새로운 인간'의 등장: 신진사대부와 신흥무인

이 썩어가는 구체제에 맞서는 두 개의 새로운 세력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

1. 신진사대부 (새로운 '머리'):


  • 정체: 주로 지방의 중소 지주 출신으로, 과거 시험을 통해 중앙 정계에 진출한 새로운 지식인 그룹.
  • 무기: 그들은 인간의 심성을 탐구하고, 이상적인 국가의 통치 원리를 제시하는 **'성리학(性理學)'**이라는 새로운 사상으로 무장했다.
  • 목표: 불교의 타락과 권문세족의 부패를 비판하며, '백성을 근본으로 삼는(民本)' 새로운 질서의 나라를 꿈꿨다. 이들은 고려라는 낡은 틀 안에서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하는 **'온건파(정몽주 등)'**와,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급진파(정도전 등)'**로 나뉘어 있었다.

2. 신흥무인 (새로운 '팔다리'):


  • 정체: 홍건적과 왜구를 격퇴하는 과정에서, 백성들의 지지를 받으며 성장한 새로운 군사 세력.
  • 대표 인물: 최영과 이성계. 특히 이성계는 황산대첩에서 왜구를 대파하는 등 연전연승하며, 백성들에게 '구국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 힘: 이들은 권문세족의 a사병과는 차원이 다른, 실전으로 다져진 강력한 '군사력'을 손에 쥐고 있었다.



운명적인 만남: 정도전과 이성계

이 두 개의 새로운 힘, 즉 **정도전의 '머리(설계도)'**와 **이성계의 '칼(실행력)'**이 만나면서, 역사의 수레바퀴는 걷잡을 수 없이 새로운 시대를 향해 굴러가기 시작했다.


  • 위화도 회군 (1388년):
    고려 우왕과 최영이 '요동 정벌'이라는 무리한 계획을 추진하자, 압록강 위화도까지 진군했던 총사령관 이성계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칠 수 없다"는 '4불가론'을 내세우며 군대를 돌려 쿠데타를 일으킨다.
  • 역성혁명(易姓革命)의 시작:
    이성계는 이 쿠데타를 통해 고려의 군사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이제 남은 것은 고려라는 낡은 왕조를 유지할 것인가(온건파), 아니면 성(姓)을 바꾸는 혁명, 즉 '역성혁명'을 통해 새로운 나라를 열 것인가(급진파)의 선택뿐이었다.

고려의 황혼은 짙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깊은 어둠 속에서, 정도전과 이성계는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의 찬란한 여명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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