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탐구

[14-2부] 자가면역-기둥 | 유전, 환경 방아쇠, 그리고 '장 누수'는 어떻게 협력하는가

질병탐구
작성자
biolove2
작성일
2025-09-24 12:59
조회
263

지난 글에서 우리는 자가면역이라는 내전이 발발하기 위해, ①유전적 소인, ②환경적 방아쇠, 그리고 ③장 누수라는 세 개의 기둥이 동시에 세워져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결코 독립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이들은 서로를 강화하고, 서로의 존재를 전제로 하며, 치명적인 시너지를 일으켜 우리 몸의 평화로운 '면역 관용'을 무너뜨리는 **'죽음의 삼각동맹'**을 형성한다.

오늘은 이 세 기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협력하여 우리 면역 군대를 반란군으로 만드는지, 그 비극적인 공모의 과정을 단계별로 추적해 보겠다. 왜 장 누수를 막는 것이 이 동맹을 와해시키는 가장 결정적인 전략이 되는지, 그 이유를 명확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1단계: 장전된 총 (유전적 소인)

  • 역할: 이것은 '운명'이 아니라, 단지 '취약성'을 의미한다. 특정 HLA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면역세포가 '아군'과 '적군'을 식별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오인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 비유: 다른 사람들보다 방아쇠가 조금 더 민감한 총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이 총은 평생 격발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머지 두 조건이 충족되면, 다른 총보다 훨씬 쉽게 격발될 수 있다.

2단계: 최전선 붕괴 (장 누수, Intestinal Permeability)

이것이 바로 모든 비극의 실질적인 시작점이다.

역할: 장 누수는 면역 시스템 전체를 **'만성적인 경계 태세'**로 만든다.

작동 기전:

  1. 미확인 비행물체(UFO)의 영공 침범: 장벽이 무너진 틈으로, 원래는 혈액으로 들어와서는 안 되는 **미소화된 음식물 단백질(예: 글루텐, 카제인)과 세균의 독소(LPS)**가 대량으로 유입된다. 우리 면역계의 입장에서 이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미확인 침입자'다.
  2. 전군 비상 경계령 발동: 면역계는 이 침입자들을 처리하기 위해, 전신에 염증성 사이토카인을 분비하며 24시간 내내 '비상 경계령'을 유지한다.
  3. 군대의 과민화: 지속적인 경계 태세 속에서, 면역 군대는 극도로 예민하고 과민해진다. 평화 유지군(Treg 세포)의 목소리는 묻히고,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것은 일단 쏘고 보려는 공격적인 성향이 강해진다.

논리적 설명: 장 누수는, 방아쇠가 민감한 총을 든 군인(유전적 소인)을, 적군이 끊임없이 국경을 넘어오는 혼란스러운 전쟁터 한가운데에 세워두는 것과 같다. 이 상태에서 군인이 아군을 적으로 오인하여 사격할 확률은 극적으로 높아진다.


3단계: 방아쇠를 당기다 (환경적 요인)

이제, 과민해진 군대 앞에서 마침내 방아쇠를 당기는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역할: 특정 환경적 요인은, 우리 몸의 '아군' 세포를 '적군'처럼 보이게 만드는 '위장술'을 사용한다.

대표적인 방아쇠 1: '분자 모방(Molecular Mimicry)'

  • 작동 기전: 특정 바이러스(예: 엡스타인-바 바이러스)나 세균, 혹은 음식물 단백질(예: 글루텐)의 일부 아미노산 서열이, 우리 몸의 특정 조직(예: 갑상선, 관절 조직)의 단백질 서열과 매우 유사한 경우가 있다.
 

'엡스타인-바 바이러스 (Epstein-Barr Virus, EBV)'

  • **'엡스타인(Epstein)'**과 **'바(Barr)'**는 이 바이러스를 1964년에 처음으로 발견한 두 영국 바이러스 학자, 마이클 앤서니 엡스타인 (Michael Anthony Epstein) 경과 그의 조수였던 **이본 바 (Yvonne Barr)**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 따라서 '엡스타인-바이러스'라고 부르는 것은, 두 명의 발견자 중 한 명의 이름만 부르는 것이 되어 정확한 표기가 아닙니다. 두 사람의 공로를 기려 항상 **'엡스타인-바 바이러스'**라고 함께 붙여서 부르는 것이 공식 명칭입니다.
  • 비극의 시작: 과민해진 면역 군대가 이 외부 침입자(예: 글루텐)를 향해 항체를 만들어 공격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항체가, 글루텐과 너무나 닮은 '갑상선 조직'을 적으로 착각하고 함께 공격해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시모토 갑상선염'이 시작되는 핵심 기전 중 하나다.

대표적인 방아쇠 2: 조직 손상과 '숨겨진 항원'의 노출

  • 작동 기전: 스트레스, 독소, 감염 등으로 인해 특정 조직(예: 관절)에 손상이 발생하면, 평소에는 면역계에 노출되지 않았던 세포 내부의 '숨겨진 단백질'들이 밖으로 드러나게 된다.
  • 비극의 시작: 이미 전쟁 상태에 있는 과민한 면역 군대는, 이 낯선 단백질들을 '새로운 적'으로 오인하고 공격을 개시한다. 이것이 '류마티스 관절염'과 같은 질환을 촉발하는 기전 중 하나다.

결론적으로, 자가면역은 이 세 기둥이 순차적으로, 그리고 협력하여 만들어내는 '완벽한 폭풍(The Perfect Storm)'이다.

그리고 이 폭풍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지점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유전자나 예측 불가능한 환경 방아쇠가 아니라, 바로 우리 손에 달린 **'장벽을 수리하는 것'**이다.

장 누수를 막는 것은, 혼란스러운 전쟁터의 국경을 봉쇄하여, 우리 군대가 더 이상 불필요한 전투로 과민해지지 않도록 '평화'를 되찾아주는 가장 근본적인 전략이기 때문이다.

이제, 이 세 기둥이 세워진 후 벌어지는 구체적인 내전의 양상들을 살펴보자.

다음 편에서는, 관절을 파괴하는 면역계의 오인 사격, '류마티스 관절염'의 세계로 들어가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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