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렴 1부 | 노년의 폐를 공격하는 '두 명의 암살자'
'폐렴'. 이 세 글자는, 특히 65세 이상의 어르신과 그 가족들에게는 죽음의 공포와 동의어로 다가온다. 실제로 폐렴은 암과 심뇌혈관 질환에 이어, 대한민국 노인 사망 원인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가장 위험하고 치명적인 질병이다. 우리는 흔히 폐렴을 '독한 감기' 정도로 오해하지만, 그 실체는 훨씬 더 복잡하고 교활하다. 우리 폐를 공격하는 암살자는, 사실 한 명이 아니다. 하나는 감기 바이러스의 뒤를 따라 외부에서 침투하는 교활한 **'침입자(감염성 폐렴)'**이고, 다른 하나는 매일 우리가 삼키는 음식과 침 속에 숨어 있다가 기회를 엿보는 **'내부의 배신자(흡인성 폐렴)'**다. 이 두 암살자의 정체와 공격 방식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폐렴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폐렴'이란 무엇인가?: 생명의 숨구멍이 막히는 병
- 전쟁터, '폐포(허파꽈리)':
우리의 폐는 수억 개의 작은 공기주머니, 즉 '폐포'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은 우리가 들이마신 공기 속의 '산소'를 혈액으로 전달하고, 혈액 속의 '이산화탄소'를 밖으로 내보내는, 생명 유지의 최전선이다. - 염증의 비극:
폐렴이란, 바로 이 폐포에 세균이나 바이러스, 또는 이물질이 침투하여 염증이 생기는 상태다. 염증이 생긴 폐포는, 전투의 결과물인 고름과 체액(염증 삼출물)으로 가득 차게 된다. - 결과 (산소 부족):
물에 젖은 스펀지가 공기를 머금을 수 없듯이, 고름으로 가득 찬 폐포는 더 이상 산소를 교환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우리 몸 전체에 산소 공급이 부족해져 호흡 곤란이 오고, 심한 경우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암살자 1호 (외부의 적): '감염성 폐렴'
이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폐렴이다.
범인: ① 세균: 가장 흔한 원흉은 **'폐렴구균(Streptococcus pneumoniae)'**이다. ② 바이러스: '인플루엔자(독감) 바이러스', '호흡기세포융합 바이러스(RSV)', 그리고 최근 전 세계를 강타했던 '코로나19 바이러스' 등이 대표적이다.
공격 시나리오: 1단계 (선발대의 침투): 먼저 감기나 독감 바이러스가 우리 코와 목의 점막(상기도)을 공격하여, 1차 방어선을 무력화시킨다. 2단계 (주력 부대의 기회): 이 틈을 놓치지 않고, 평소 우리 코와 목에 잠복해 있던 폐렴구균과 같은 '2차 세균'들이, 방어선이 뚫린 기도를 따라 폐 깊숙한 곳(하기도)까지 침투하여 본격적인 염증을 일으킨다.
왜 '노년'에 치명적인가? : 젊을 때는 강력한 면역 군대가 이 2차 세균의 침투를 대부분 막아낸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면역력이 떨어지고(면역 노화, Immunosenescence), 가래를 뱉어내는 힘(기침 반사)이 약해진 노년층은, 이 2차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감기 끝에 폐렴 온다"는 옛말은, 바로 이 과정을 정확히 설명하는 과학이다.
암살자 2호 (내부의 배신): '흡인성 폐렴'
노년기 폐렴에서, 감염성 폐렴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무서운 것이 바로 '흡인성 폐렴'이다.
1. 범인: 외부의 세균이 아니라, **음식물, 위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입속 세균'**이 식도가 아닌 기도로 잘못 넘어가는 '미세 흡인(Micro-aspiration)' 현상이 주범이다.
2. '삼킴 장애(연하 곤란)'라는 배신:
- 정상 상태: 우리가 음식을 삼킬 때, 우리 목에서는 '후두덮개(Epiglottis)'라는 뚜껑이 반사적으로 기도의 입구를 막아, 음식이 식도로만 안전하게 넘어가도록 한다.
- 노화로 인한 붕괴: 하지만 나이가 들면, 이 삼키는 과정에 관여하는 수많은 '근육'의 힘이 약해지고, '신경 반사'의 속도가 느려진다. 그 결과, 후두덮개가 기도를 완전히 막지 못하거나, 타이밍을 놓쳐, 소량의 음식물이나 침이 기도로 넘어가는 '사레들림' 현상이 잦아진다.
3. '입속 세균'이라는 시한폭탄: 우리가 잠자는 동안, 우리도 모르는 사이 소량의 침이 기도로 계속해서 넘어간다. 건강한 젊은 사람의 침은 비교적 깨끗하지만, 구강 위생이 불량하거나 면역력이 떨어진 노인의 침 속에는 엄청난 수의 폐렴 유발 세균이 득실거린다. 이 '세균 폭탄'이 매일 밤 폐로 조금씩 떨어지는 것이다.
4. 특히 위험한 경우: 뇌졸중 후유증, 파킨슨병, 치매 등 신경계 질환을 앓고 있는 어르신들은 '삼킴 장애'가 매우 심각하여, 흡인성 폐렴의 최고 위험군에 속한다.
이처럼, 노년의 폐는 외부의 '침입자'와 내부의 '배신자'라는 두 명의 암살자에게 동시에 위협받고 있다. 이 두 적의 공격 방식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폐렴이라는 거대한 성을 함락시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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